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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시가 눈을 뜨자, 벌거벗은 소녀 둘이 나란히 서서 자신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진 듯 온몸이 겪어보지 못한 충격에 비명을 지르려 했지만,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워 입을 벌려도 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간신히 숨을 들이쉬자, 구토물을 삭힌 듯한 역겨운 냄새가 코를 찔렀다.
두 소녀는 도로시를 보고 놀라기는커녕, 작은 목소리로 속삭이며 이야기하고 있었다. 한 명은 뺨뼈가 튀어나온 흡혈귀처럼 핼쑥한 얼굴을 하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익은 토마토처럼 통통했다. 둘 다 도로시와 비슷한 십대 중반의 나이였고, 마른 피와 먼지가 몸에 덕지덕지 붙어 있었다.
"그럼, 할게."
통통한 소녀가 짧게 말하더니, 도로시의 벌거벗은 몸 위에 올라탔다. 약 5미터쯤 되는 거대한 지렁이를 도로시의 목에 감고 양쪽 끝을 세게 잡아당겼다. 축축한 섬유가 목을 조여왔다. 도로시는 기도가 막혀 쓴맛이 입안 가득 퍼졌다. 몸을 흔들어 발버둥 쳐 봤지만, 소녀는 납덩이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도로시는 두 눈을 크게 뜨고 헐떡였다.
"잠깐만."
말라깽이 소녀가 그렇게 말하며 통통한 소녀의 손을 멈추게 했다. 통통한 소녀가 지렁이를 놓았다. 둘이 잠시 무슨 말을 나누더니, 통통한 소녀가 허리를 꼿꼿이 세웠다. 도로시는 목을 부여잡고 콜록거렸다. 말라깽이 소녀는 도로시의 옆구리에 손을 넣고 몸을 끌어당겨 평평한 바닥에 눕혔다.
"아사코 녀석, 죽은 거 같아."
말라깽이 소녀가 중얼거렸다. 고개를 왼쪽으로 돌리자, 방금 전 자신이 있던 바로 옆에 머리가 움푹 들어간 소녀가 쓰러져 있는 것이 보였다.
"이 아이는 그냥 둬도 돼?"
통통한 소녀가 도로시를 흘긋거리며 말했다.
"죽이지 않아도 돼."
마른 소녀의 말에, 통통한 소녀는 안도한 표정으로 가슴을 쓸어내렸다. 정황은 전혀 알 수 없지만, 당장 죽임을 당할 걱정은 없는 듯했다.
안심이 되는 동시에, 수많은 의문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이 어두컴컴한 곳은 대체 어디인가. 그녀들은 누구이며, 왜 벌거벗고 있는 걸까. 귀신이 씌인 듯 머리가 멍했지만, 여기가 평범한 공간이 아니라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십여 초의 정적.
갑자기 바닥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우웅거리는 하수관 공사 소리가 공기를 진동시켰다. 두 소녀는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고 벽에 기대어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다시 주위를 둘러보니, 노출 콘크리트가 드러난 어두컴컴한 방에 거대한 유리관 세 개가 우뚝 서 있었다. 방은 삼각형 모양이었고, 세 꼭짓점에 각각 하나씩 유리관이 놓여 있었다. 다양한 피부색의 소녀들이 각 유리관에 몇 명씩 가둬져 있었다. 도로시도 그중 하나에 있었다.
방 한가운데에는 용광로 같은 둥근 구멍이 뚫려 있고, 녹슨 사다리가 하나만 걸려 있었다. 구멍 안에는 밋밋한 어둠이 엿보였다.
기계음은 오른쪽 유리관에서 들려왔다. 벌거벗은 소녀 다섯 명이 벌집을 건드린 듯 아우성을 치며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우웅거리는 소리가 유난히 커졌다.
"안 보는 게 좋을 거야."
통통한 소녀가 작게 중얼거렸다.
그 순간, 오른쪽 통에 들어 있던 소녀들의 배에서 스프링클러처럼 피가 뿜어져 나왔다. 목과 가슴에서도 쉴 새 없이 피가 튀어 올랐다. 붕 떠오른 머리통은 눈썹 부근에서 쩍 갈라지며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뇌수가 쏟아졌다. 튀어나온 내장도 산산조각 났다. 순식간에 다섯 명은 자취를 감추고, 뼈와 살 조각들이 바닥에 나뒹굴었다.
굉음이 멈추자, 깅깅거리는 마찰음과 함께 오른쪽 통이 비스듬히 떠올랐고, 약 4.5미터 높이를 중심으로 기울기 시작했다. 바닥에 흩어져 있던 인육이 피를 윤활유 삼아 한데 모였다. 통이 더 기울어지자, 소녀들의 살점은 통에서 흘러나와 엉망진창으로 중앙 구멍 속으로 떨어졌다.
* * *
30분 정도가 지났을까. 신경이 마비된 탓인지, 몸의 고통이 많이 누그러졌다. 다행히 큰 출혈이나 골절은 없어 보였다. 소녀들이 다시 자신을 공격할 기색도 없었다. 몸을 부딪혀 생긴 상처보다,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한 불안감이 더욱 커져갔다.
원통 안에는 도로시와 두 명의 소녀뿐이었다. 다만 원통 구석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소녀들의 시체가 쌓여 있었다. 엎드려 겹쳐져 있어 얼굴은 알 수 없었지만, 몸매를 보아하니 모두 10대 중반쯤 되어 보였다. 교과서에서 본 강제수용소 사진과 매우 흡사했다.
"저기, 당신들은?"
도로시는 오른손으로 사타구니를 가리고 천천히 몸을 일으켰다. 마치 못이 박힌 것처럼 관절이 아팠다.
"아까 목을 조른 건 미안해. 나는 니나야."
뚱뚱한 소녀가 끈적이는 붉은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기침을 한번 하자 가슴과 배의 살이 흔들렸다. 도로시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자,
"여긴 레이라야."
니나가 마른 소녀를 가리켰다. 레이라라고 불린 소녀는 시체 탑 꼭대기에 머리가 움푹 들어간 시체를 쌓아 올리고 있었다. 창백한 피부에 굵은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하나만 물어볼게. 너는 여기서 못 나가. 지금 당장 죽을래, 아니면 벌레 구덩이 같은 곳에서 살아남을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해."
레이라가 거만한 태도로 도로시의 맞은편에 앉았다. 가지처럼 생긴 손가락에 놋쇠 반지가 빛나고 있었다.
"살고 싶어요."
"그럼 꼭 규칙을 지켜. 여기서 살아남는 방법은 규칙을 지키는 것밖에 없어. 난 여기 와서 18일째고, 저 뚱뚱한 애는 6일째야. 둘 다 규칙을 지키니까 살아있는 거야."
레이라가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얼마나 더 참아야 하는 거예요?"
"몰라. 이 푸드 프로세서에서 탈출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글쎄, 저 구멍이 시체즙으로 가득 찰 때까지 아닐까?"
"푸드 프로세서?"
"몰라. 음식을 분쇄하는 기계일껄."
"고기나 생선을 갈아주는 믹서기 같은 거네."
니나가 말하며 손가락을 빙빙 돌렸다. 손끝을 칼날처럼 보이는 모양새였다.
"우리가 아는 것만 알려줄게. 여기 있는 세 개의 유리관은 인간용 거대 푸드 프로세서야. 각 용기에 매일 여자애 한 명씩 떨어져. 용기가 세 개니까 하루에 떨어지는 건 세 명이지. 그리고 일정한 인원이 되면 칼날이 돌아가서, 그 용기 안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 다진 고기가 되는 거야."
"다, 다진 고기?"
"너도 봤잖아. 칼날은 저거야."
레이라가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반경 10피트(약 3m) 정도 되는 원통의 중심에 코코넛 나무 둥치만큼 굵은 기둥이 서 있었다. 허리 높이부터 마주 보며 두 개의 칼날이 뻗어 나와 있었다. 칼날 끝은 곡선을 그리며 도로시의 머리 위까지 뻗어 있었고, 날카로운 칼날이 흐릿하게 빛나고 있었다.
"누가 만들었는지, 무슨 목적인지, 그런 건 몰라. 생각해 봤자 소용없어. 내가 여기 떨어졌을 때, 이 용기에는 아무도 없었어. 전날에 칼날이 돌아간 직후였나 봐. 바닥에는 피인지 똥인지 모를 끈적한 것이 덕지덕지 붙어 있었지. 그 후로 매일 한 명씩 애들이 떨어졌어. 인종도 종교도 사는 주도 다 달랐지만, 나이가 14살이라는 게 공통점이었어. 너도 그렇지?"
"네, 14살요."
"그렇겠지. 남은 두 개의 용기를 보니, 다섯 명이 모이면 칼날이 돌아간다는 건 상상할 수 있었어. 어떤 원리인지는 몰라도, 1분 정도 안에 가운데 공이 돌기 시작하더라고. 근데 매일 애들이 떨어지는 건 어쩔 수 없었지. 천장도 너무 높고, 탈출할 방법이 없어 보였어.
근데 나흘째에 떨어진 애가 머리를 부딪혀 바로 죽었어. 그 다음 날 또 애가 떨어졌는데, 칼날은 돌아가지 않았지. 우리가 다진 고기가 되는 조건은 살아있는 사람이 다섯 명이 되는 거였던 거야."
레이라는 말을 끊고, 발밑에 떨어진 손톱을 벽에 던졌다. 원통 외벽을 따라 움푹 파인 곳이 있었고, 똥과 오줌이 고여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당연히 서로 죽이는 거지. 다음 날까지 누군가를 죽이지 않으면, 모두 다진 고기가 된다는 걸 알게 된 거야. 다음 애가 떨어지기 전에 둘이 죽고, 나를 포함해 셋이 살아남았어. 네가 방금 엉덩이로 부숴버린 아사코도 그중 하나야."
레이라가 시체 더미 위에 올려놓은, 머리가 움푹 들어간 소녀를 말하는 거였다. 그녀는 도로시에게 깔려 목숨을 잃은 것이다. 숨이 가빠지고, 세상이 빙글빙글 도는 것 같았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조심하지 않은 아사코가 잘못한 거야. 사람을 죽일 때마다 후회했다면, 여기선 살아남을 수 없어."
"부숴 죽인 건 나도 마찬가지고."
니나가 어색하게 웃었다.
"방금 말한 규칙이 뭐예요?"
"매일 떨어지는 애를 번갈아 가며 죽이는 거야. 살아있는 사람이 늘어나지 않게 하려면, 애가 떨어지자마자 죽이는 게 제일 빠르지. 일단 내일부터 네가 해치워."
레이라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을 이었다.
"만약 못 죽이겠다면, 내가 너를 죽일 거야."
* * *
손목시계도 휴대폰도 없어서 시간이 전혀 감이 안 잡힌다. 몸에 지니고 있던 옷이나 액세서리는 모두 빼앗겼다. 남은 건 반지와 피어스뿐이다. 도로시는 허리를 가리고 일어서서, 유리에 얼굴을 가까이 대고 밖을 내다봤다.
천장에 매달린 벌거벗은 전구가 세 개의 용기를 희미하게 비추고 있다. 오른쪽 통은 비어 있고, 바닥에는 핏자국이 덕지덕지 붙어 있다. 왼쪽 통에는 네 명의 소녀들이 어깨를 맞대고 앉아 있었다. 이 인원으로 서로 죽이기 시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음식 처리기의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내일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안다면 가만히 있지 못할 것이다.
바닥에 앉아서, 자신들이 있는 용기를 바라봤다. 쌓여 있는 시체 더미가 섬뜩한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쓰레기장에 버려진 쓰레기 봉투처럼, 소녀들의 시체가 아무렇게나 겹쳐져 있었다. 세어 보니 시체는 15구 구였다. 대부분의 소녀들은 이 용기에 떨어지자마자 레이라나 아사코의 손에 죽임을 당했을 것이다.
도로시는 천장을 올려다봤다. 용기의 윗부분까지는 25피트(약 7.6m) 정도는 될 듯했다. 장대높이뛰기 선수라도 겨우 닿을까 말까 한 높이였다. 벽면에 울퉁불퉁한 곳이 있었다면 프리 클라이밍처럼 기어올라갈 수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아쉽게도 유리는 매끈하고 평평해서 발을 디딜 곳이 없었다. 그래서 도로시는 중앙의 볼에 시선을 고정했다. 허리 높이부터 칼날이 휘어져 위쪽으로 뻗어 있었다. 몸을 조심해서 칼날 위로 올라가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마치 밧줄처럼 거대한 지렁이–—아니, 인간의 창자를 던져서 용기의 가장자리까지 닿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창자를 걸 곳이 없어서 역시 탈출은 어려워 보였다.
도로시는 문득, 눈앞의 악몽 같은 상황을 자신이 냉정하게 관찰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랐다. 조금만 더 현실 같았다면 꿈이나 연극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른다. 너무나 비현실적이어서 오히려 자신의 눈을 의심하게 될 정도였다. 발광도 하지 않고 혼란스러워하지 않는 자신이 미웠다.
"도로시는, 여기 오기 전 일 기억나?"
하고 말을 건넨 사람은 통처럼 뚱뚱한 니나였다. 오른쪽 다리를 쭉 뻗은 채 바닥에 양손을 짚고 도로시 옆에 털썩 앉았다.
"흐릿하게는. 프리다이빙 대회가 다가와서, 연습을 하려고 학교 근처 바다에 갔었어요."
"프리다이빙?"
"몸 하나로 얼마나 깊이 잠수할 수 있는지 겨루는 경기예요. 바닷물이 차가워서 기분이 좋았던 건 기억나는데, 그 이후 기억이 없어요."
도로시는 신중하게 말했다. 바다에 갔던 것은 사실이지만, 다이빙 연습이라는 건 거짓말이었다.
"구급차 사이렌 소리, 기억 안 나?"
"⋯⋯사이렌? 아, 생각해 보니 그런 것 같기도 해요."
애매하게 도로시는 고개를 저었다. 코끝에 페퍼민트 향기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옆 동네에 있는 단골 병원은 원장 부인이 *아로마테라피에 푹 빠져서, 인근에서 민원이 들어올 정도로 향기를 풀풀 풍겼다.
*아로마테라피: 향기로 치료를 하는 요법.
아마도 자신은 바다에서 의식을 잃은 후, 그 병원으로 실려 갔을 것이다.
"병실에 있었던 기억은 있어요. 아마 구급차에도 탔을 거예요."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인가"
니나가 도로시의 손을 잡고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들것에 실려 온 것까지만 기억해. 전날 남자친구랑 크게 싸우고 자포자기해서 위스키를 마구 마셨거든. 그리고 귀갓길에 큰 차에 부딪혔어. 다리만 살짝 삐끗했는데. 금방 구급차가 와서 들것에 실렸지. 거기서부터 기억이 안 나."
확실히 니나의 오른쪽 다리는 정강이부터 발끝까지 붉게 멍이 들어 있었다. 앉을 때 동작이 어색했던 것도 다리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 구급차가 가짜였다는 거예요?"
"응. 구급대원인 척한 변태였던 것 같아."
"대원의 얼굴은 기억하세요?"
"그게 기억이 안 나. 근데 범인은 틀림없이 그 놈이야."
"어차피 모르겠지."
통 밑바닥에 드러누워 있던 레이라가 갑자기 끼어들었다. 같은 나이인데도 태도가 너무 건방졌다.
"학교 운동장에서 잠깐 눈을 붙였더니 갑자기 여기로 오게 됐다는 사람도 있었어. 아무리 머리를 써 봐도 생각할수록 헛수고야."
"잠자는 동안 큰 부상을 입어서 구급차에 실려 왔을지도 몰라."
"아니, 생각해도 무쓸모라고.!" 레이라가 목소리를 높였다. "변태든 악마든 외계인이든, 어차피 못 벗어난다면 똑같잖아. 탈출 방법을 알면 가르쳐 줘. 그때까지는 닥치고 있어."
"레이라는 여기 오기 전 일을 기억해요?"
도로시가 조용히 물어보자,
"기억하지. 근데 안 가르쳐줄껀데."
레이라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대답했다.
"레이라는 심술궂으니까, AB형이지?"
니나가 험담을 했다.
"맞아."
"아하하, 그럴 줄 알았어. 그리고 여동생이나 남동생 있지? 분명 그럴 거야."
니나가 입술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레이라는 코웃음을 치며 "외동딸이야."라고 대답했다.
"어, 그래?"
"혈액형 가지고 성격이 어떻니 저떻니 하는 거 말도 안 되잖아. 징그럽게 뭐래. 그런 거 때문에 남자친구한테 차인 거 아니야?"
"너무해. 그런 거 아니라고."
니나가 양손을 허둥대자 코끼리 엉덩이 같은 엉덩이가 부르르 떨렸다.
"진정해. 곧 가스 시간이야. 내일 보자."
레이라는 드러누운 채 눈을 감았다. 마치 약속이나 한 듯, 머리 위에서 망가진 소화기 소리가 났다.
"밤이 되면 수면제 가스가 나오는 거야."
옆에서 니나의 목소리가 들렸다. 언제부턴가 옆으로 누워 있었던 모양이다.
아직 밤이라고 하기엔 이른 것 같지만, 시계가 없으니 확인할 방법이 없다. 시체의 흔적이 남은 핏물과 살 조각을 조심하며, 도로시도 똑바로 누워 하늘을 보았다. 암모니아 같은 자극적인 냄새가 코를 찔렀다.
가슴에 가득한 불안을 억누르고, 도로시는 눈을 감았다.
* * *
여름방학 시작하고 한 달 반이 훌쩍 지난 8월 초 오후.
"야, 도리. 오랜만이네?"
옆 동네 도서관에서 책을 반납하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자전거를 타고 슈퍼마켓 주차장을 가로지르려던 참이었다. 그때 동급생인 클레어에게 불려 섰다. 클레어는 차단봉에 앉아 지역 후배들과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
못 본 척하고 지나가려고 하자 클레어가 갑자기 일어서더니 내 몸에 부딪혀 자전거를 쓰러뜨렸다. 시야가 뒤집히면서 뺨이 아스팔트에 쓸렸다. 입술을 핥아보니 피 맛이 났다.
"뭐하는 거야?"
"그냥 장난으로 어깨 좀 건드렸을 뿐인데. 미안하니까 와서 얘기 좀 하자. 야, 너희들도 좀 도와."
도로시가 일어서려는 순간, 불량 소녀 넷이 덮쳐서 도로시를 제압했다.
"클레어, 어디 가는 거야?"
"등대. 이 녀석한테 바다의 재미를 알려줘야지."
클레어의 말에 따라 소녀들은 도로시를 봉고차에 밀어 넣었다. 뒷좌석에는 담배 냄새가 가득했다. 클레어가 시동을 걸자 15년 전에 유행했던 힙합 음악이 스피커에서 흘러나왔다. 클레어가 나를 싫어하는 이유는 짐작이 갔다. 클레어는 시장 골목 끝자락에 있는 전당포 주인의 딸이었고, 동네에서도 소문난 불량배라 반에서도 왕따나 다름없었다. 반에서 따돌림을 당하지 않았던 건 수영을 엄청 잘해서 매년 수영 대회에서 우승하는 에이스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올봄, 내가 햄프턴에서 이사 오면서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다. 어릴 적부터 전문 코치와 다이빙 연습을 해왔던 나는 시골 마을의 수영 짱 따위와는 상대가 될 수 없었다. 수영 대회 결과는 예상대로였고, 클레어는 1등이라는 영광뿐만 아니라 학교에서의 자리를 잃게 되었다.
"어? 너 동생 아니야?"
클레어가 핸들을 돌리며 조수석에 앉은 아이에게 말했다. 고개를 들어보니 길가에 한 소녀가 비틀거리며 걷고 있었다. 얼굴이 창백하고, 걸음걸이도 불안정했다.
"냅둬." 조수석에 앉은 부하 중 한 명이 턱을 괴고 대답했다. "몽유병 걸린 거야. 곧 알아서 집에 갈 거야."
"잠든 채로 계속 걷는다고? 대단하네."
"이젠 익숙해. 근데 저 년, 옷차림 좀 봐."
부하가 우리를 돌아보며 말했다. 클레어가 웃음을 터뜨렸다.
"엄마가 사준 옷 다 버리면 안 되지. 너희, 저 년 옷 벗겨."
클레어가 뒷좌석을 가리키며 명령했다. 소녀들은 도로시를 붙잡고 원피스와 속옷을 벗겼다.
봉고차는 숲길을 지나 바다를 향해 달렸다. 작은 항구 구석에 봉고차를 세우고, 클레어 일행은 도로시를 끌어내어 사람들의 눈에 띄지 않는 등대 뒤편으로 끌고 갔다.
"잠수 잘한다며? 우리도 가르쳐 줘."
클레어는 도로시의 뒤통수를 잡아채더니, 난간 틈새로 밀어 넣어 얼굴을 바닷물에 푹 담갔다. 도로시가 고개를 들려고 발버둥 쳐도 클레어는 힘을 풀지 않았다. 도로시는 간신히 숨을 참았다. 뒤에서 소녀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기분 어때?"
3분쯤 지나서야 클레어가 겨우 팔에 힘을 풀었다. 도로시는 얼굴을 들어 허겁지겁 공기를 들이켰다.
"뭐야, 아직도 멀쩡하네."
클레어는 인상을 찌푸리며 도로시의 뺨을 발로 찼다.
"빨리 기절해라."
"제발 그만해 주세요."
기침을 하며 애원하는 도로시의 얼굴을 클레어는 운동화로 짓밟았다.
"그냥 죽어라."
클레어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도로시의 머리를 다시 바다에 밀어 넣었다. 시야가 깜빡이며 흐릿해졌다. 더 이상 숨을 참을 수 없었다. 코와 입으로 바닷물이 쏟아져 들어왔다.
"너희들, 그 년 목을 당장 졸라!"
뒤에서 그런 소리가 들렸다. 팔다리의 감각이 이미 사라졌다. 몸이 불에 타는 듯 뜨거웠다. 폐에 남아있던 공기가 거품이 되어 입술에서 터져 나왔다.
"내일은 네 엄마도 익사시켜 줄게."
더 이상 도로시의 의식은 파도에 휩쓸려 천천히 멀어져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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