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녀를 죽이는 100가지 방법/챕터

Chapter 4. 소녀 비디오 공개판 - 8

NeoIn 2025. 1. 18.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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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가는 매미 울음소리 같은, 희미한 기계음이 울리고 있다–—
천천히 의식이 돌아온다. 눈을 뜨니, 먼지 낀 천장이 펼쳐져 있었다.
주변에 사람 기척은 없다. 휑한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무미건조한 방 한가운데, 나 혼자 침대에 누워 있었다.
상체를 일으키니, 정면에 스테인리스 용기들이 늘어서 있었다. 지지직거리는 기계음도 이 용기에서 나오는 소리다. 내 키만큼이나 높다. 냉장고일까. 눈을 비비려다가, 머리에 감긴 붕대를 느꼈다. 왼팔에는 링거 바늘이 꽂혀 있었다.
점차 기억이 되살아난다. 아파트에서 카라사와에게 살해당할 뻔했고, 간신히 알라딘에게 구조되었던 것이다. 카라사와의 거친 숨소리가 귓가에 생생하게 맴돈다. 여긴 어디일까.
나는 침대에서 내려왔다. 오른손이 잘 움직여지지 않는다. 왼손으로 링거 스탠드를 밀고 천천히 방을 이동한다. 스틸 도어 손잡이를 돌려봤지만, 잠겨 있어 열리지 않았다.
지지직거리는 소리에 이끌리듯 스테인리스 용기 앞에 섰다. 손잡이를 당기자 틈새로 찬 공기가 새어 나왔다.
냉동고에는 비닐봉투에 담긴 '원숭이' 시체들이 가득했다. 잘게 잘린 고기 조각도 있고, 팔다리가 붙어 있는 시체도 있었다. 윗단 구석에는 익숙한 '새끼원숭이' 시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때, 스틸 도어 너머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누군가 방에 다가오고 있었다. 열쇠를  꽂는 소리와 함께 자물쇠가 열리는 소리.
"건강해 보이는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라딘이었다. 문이 쾅 닫히는 소리가 났다.
"여긴 어디죠?"
말을 하자 목이 아팠다.
"사무소 창고야. 몸은 아프지 않아?"
"괜찮습니다. 치료해 주셨군요."
"우리한테는 의대를 나온 관계자가 두 명이나 있어. 얼굴색도 예전보다 좋아진 것 같지?"
내 머리에 감긴 붕대를 쓰다듬으며 알라딘은 기뻐하며 웃었다.
"감사합니다. 이제 괜찮으니 돌아가겠습니다."
"안 돼." 알라딘이 쓸쓸하게 고개를 저었다. "넌 약속을 어겼어. 난 네게 여자를 폐기하라고 부탁했지. 아기를 낳으라고 한 적은 없어."
"그건…" 순간 입을 열었다. "낳자마자 죽일 생각이었어요."
"흥. 하지만 베레모 아저씨에게 들킨 순간 게임 오버였어. 경찰 관계자였다면 어쩔 생각이었어?"
"아닌가요?"
"진짜 경찰이었으면 당연히 체포되었겠지. 아파트 관리인에게 물어봤더니, 그 아저씨는 이혼 후에 좀 이상해졌대. 요즘엔 자신을 전 경찰이라고 믿고 있는 것 같더라. 드라마를 너무 많이 본 건지도 몰라."
복도에서 새어 나오던 형사 드라마 테마곡이 머릿속에 울려 퍼진다.
"혹시, 주소는⋯⋯"
"너와 같은 동에 살았어. 바로 옆집. 이혼한 아내가 가끔 찾아왔던 모양이더라. 지금쯤 실종신고를 했을지도 몰라."
나는 마치 너구리에게 속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관리인이 말했던 '정신 나간 노인'이 바로 카라사와였던 것이다. 딸을 잃었다며 착한 척했지만, 생각해보니 드라마 설정과 똑같았다. 처음에 '울음소리가 시끄럽다'며 불평했던 젊은 여자가, 과거의 아내였던 것이다.
"아무것도 몰랐네. 너와 이야기하다 보니 식은땀이 나네."
알라딘이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었다.
"시체 유기는 다른 방법을 생각해볼게. 넌 죽어야겠지만, 그 전에 똥을 좀 닦아야 할 거 같아. 냉동고 안에 있는 원숭이를 먹어줄래? 윗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은 잠궈둘 테니, 이 층은 자유롭게 사용해도 좋아. 문을 열면 부엌도 있고.
맞은편에 화장실이 있으니까 똥은 거기서 눠."
"그런⋯⋯." 혀가 꼬였다. "제발 그만해 주세요."
"싫어? 그럼 지금 죽여버릴까?"
알라딘은 가슴 주머니에서 권총을 꺼내 보였다. 등골이 오싹해졌다.
"···⋯먹겠습니다."
"아하하, 좋은 녀석이군. 자살만 하지 마. 만약 자살을 시도하면, 내장을 꺼내서 죽여 버릴 거야."
"잠깐만요." 간신히 목소리를 짜냈다. "아이만큼은 제발 살려주시면 안 될까요?"
"안 돼. 네가 낳았잖아."
알라딘은 아쉬운 듯 손을 흔들며 방을 나갔다.

그 후 매일 나는 '원숭이'를 먹었다.
처음에는 창고 구석구석을 살펴보며 방에서 탈출할 방법을 찾았다. 오마루가 보던 영화 주인공은 망치 하나로 감옥에서 탈출했었다. 알라딘이라고 해서 감금 전문가는 아니니까, 어딘가 허점이 있을 법도 했다.
하지만 이틀이 지나자 기대는 포기로 바뀌었다. 영화나 게임과는 사정이 달랐다.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창고에서 탈출할 방법이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설령 탈출하더라도, 알라딘은 반드시 나를 찾아내서 죽일 것이다. 차라리 체념하는 편이 마음이 편했다.
그 후 매일, 담담하게 '원숭이'를 먹으며 지냈다. 몸이 익숙해져서 그런지, 아파트에 있을 때처럼 토하지는 않았다.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인지, 예전보다 훨씬 빠르게 살이 빠졌다.
소녀에게 고기를 먹여 살아왔던 내가, 그 몇 배나 되는 고기를 먹게 될 줄이야.
이것이 인과응보라는 걸까.
"역시 넌 성실하구나. '토끼와 거북이'의 거북이 같아."
알라딘은 가끔 창고를 들여다보며 그렇게 말했다.

창고에 갇혀 지낸지 18일째.
오늘 아침에도 뇌를 먹고, 산산조각낸 두개골을 미지근한 물에 녹여 마셨다. 화장실에서 바나나 같은 똥을 누고, 평소처럼 침대에 누웠다. 위층에서는 알라딘이 소녀를 유혹하는 듯 남녀의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눈을 감으면, 오마루와 아기의 얼굴이 떠올랐다. 두 사람이 죽던 날의 장면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애초에 아기에게 볼펜을 꽂은 것이 정말 오마루였을까?
시체를 발견하기 직전까지 나는 현관에 있었으므로, 제삼자가 방에 침입했을 가능성은 없다. 갓 태어난 아기가 스스로 목에 볼펜을 꽂을 리도 없다. 오마루 외에 범인이 있다고 생각하는 건 무리일 것이다.
그럼 왜 오마루는 아기를 죽였을까? 그 이유를 깨달은 건 화장실에서 똥을 누고 있을 때였다.
몇 가지 단서가 있었다. 오마루는 부모님의 위패를 변기에 버렸을 때, 당황한 나머지 변기의 '물 내리는' 버튼을 부숴버렸다. 나 역시 아파트 거실에 사토코가 나타났을 때, 순간적으로 가위를 목에 찔러 죽였다. 예상치 못한 문제에 직면했을 때, 사람들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문제의 원인을 공격하려는 경향이 있다.
–—조금이라도 소리 내면, 너도 아기도 죽여 버린다.
그날 오마루를 궁지로 몰아넣었던 건 바로 나의 이 말이었다. 이 말을 진심으로 받아들인 오마루는 필사적으로 소리를 죽이고 아기를 낳았다.
하지만 갓 태어난 아기는 울음을 터뜨리려고 했다. 당황한 나머지 수건을 물려주려 했지만, 아기 입에 잘 들어가지 않았다. 평정을 잃은 오마루는 순간적으로 볼펜을 목에 찔러 버린 거다.
—내가 바보라서⋯⋯, 벌을 받은 거야.
오마루의 심정을 생각하니 가슴이 미어졌다. 오마루가 아기를 찌른 건, 나를 위해서였던 거다.
곧바로 오마루를 죽인 건 잘한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아이를 죽인 후회를 안고 살아도, 좋은 인생은 못 살았을 테니까.
나는 침대에서 일어나 냉동고에 넣어둔 '부모 원숭이'의 시체를 바라보며,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았다.